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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이야기(4) : 근세 육상, 해상 실크로드를 통한 교류

by 슈기슈가 2023.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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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근세(960(북송)-1644(명말)) 육상 실크로드를 통한 교류

근세에 접어들면서 투르크 민족(돌궐족)이 당나라에 의해 멸망합니다. 그들은 서쪽으로 본거지를 이동하게 되는데 중앙아시아에 셀주크투르크, 카라한 왕조를 건국합니다. 1055, 셀주크투르크가 수니파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중앙아시아를 장악하게 되었는데, 그들은 예루살렘을 차지하고 비잔티움 제국을 위협하였고 그 결과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레반트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두고 십자군 전쟁(1095~1291년)이 발발하게 됩니다. 십자군 전쟁의 결과 서방세력의 동방 진출로 동서교류가 촉진 되었으며, 셀주크투르크가 실크로드의 주요도시를 장악하게 됩니다. 그들은 교역품을 위하여 17차례 인도로 원정을 떠나기도 했으며, 유럽인들로 하여금 실크로드를 대체하는 '해상 교역로'를 찾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다음은 중국의 근세 육상 실크로드에 대한 설명입니다. 송나라는 510국의 혼란을 끝내고 통일 국가를 이룩하였으나, 거란족과 여진족에 세력 확장에 의하여 양쯔강 이남으로 남하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기존에 진행하던 육로 교역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으며, 해상 교역을 통하여 아랍제국과 교역하게 됩니다. 또한 그들은 해상을 통한 교역을 확대하기 한 관청인 시박사를 설치하고, 중국의 4대 발명품인 나침반과 화약을 발명하는 등의 성과를 이루어 냈습니다. 이 때 송이 양쯔강 이남인 남송으로 옮겨지면서, 여진족이 중국을 장악하게 됩니다. 금나라는 아구다1113년에 건국한 나라로, 서하가 장악한 막남로를 통해 교역을 했습니다. 그들은 주로 옥, 구슬, 에메랄드, 마노 등의 물품을 교역하였으며 서하에 통행세를 납부하는 중계무역을 실시합니다. 또한 송과의 국경 교역지인 각장을 통하여 차, 상아, 서각 등의 물품을 송과 교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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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송의 세력이 점차 약화되고 몽골제국이 세계적인 대국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징기즈칸은 1206년부터 정복 전쟁을 시작하여 서하, 호라즘제국, 남송 등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몽골 제국은 중앙, 서방, 중국의 실크로드를 모두 장악하게 됩니다. 그들은 모든 종교에 대하여 관용적인 태도를 취하며 불교, 기독교, 네스토리우스교 등의 다양한 종교를 발전시켰습니다. 또한 그들이 실크로드를 경제적인 이유로 모두 장악하게 되면서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 : 몽골 제국의 정복으로 인해 13~14세기 유라시아에 안정을 가져다 준 기간을 의미)의 시대가 도래하여 교역의 장애요인이 모두 사라지게 되었으며, 이시기에 역참 설치를 통하여 동서를 연결하는 거대한 교통망이 탄생되면서 실크로드는 더욱 더 발전할 수 있었다. 또한 십자군 전쟁을 계기로 서방의 동방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게 되면서 동서양의 문화교류는 더 활발해지게 됩니다. 동양에서 서양으로는 화약, 나침반 등이 보내졌으며, 서양에서 동양으로는 이슬람의 천문학, 지리학, 의학 등이 전래됩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에는 당시 문화에 대한 내용이 잘 담겨져 있습니다. 몽골제국은 점차 쇠퇴하여 일칸국, 원나라, 오고타이 칸국, 킴차크 칸국 등 4개국으로 분열되는데, 이때를 틈타서 1370년 중앙아시아, 이란,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한 왕조인 티무르 제국이 유목민의 군사력과 정주민의 경제력을 기반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그들은 중앙아시아 일대를 장악하여 실크로드의 기능 회복을 촉진하는 등의 노력을 통하여 실크로드를 발전시켰습니다. 특히, 티무르의 문화는 고대 페르시아의 문화와 아랍, 이슬람 문화를 융합하여 화려한 도시 문화를 이룩했습니다.

2. 근세(960(북송)-1644(명말)) 해상 실크로드를 통한 교류

앞서 설명하였듯이 송나라 시대에는 아랍 및 비한족 세력이 육상실크로드를 장악하였기 때문에 육상 교역이 어려웠습니다. 또한 당조의 영향력이 감소하고, 유라시아 여러 제국들의 정치적 변화가 계속 되는 등의 변화를 겪습니다. 그러나 남중국 경제는 지속적으로 발전하였으며, 조선술과 항해술의 발달로 육상루트 중심에서 해상루트 중심으로 교역의 형태가 전환되게 되었으며, 이는 해양 루트 개척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송과 주로 교역을 한 교역국은 대표적으로 3개로 나눌수 있습니다. 우선, 아랍입니다. 아랍의 사라센제국은 대식국으로 불리며 중계무역을 재패합니다. 그들은 송의 항구도시에 집단 거래지를 형성하여 교역을 활성화 합니다. 다음은 꺼디리입니다. 이 국가는 동남아시아를 재패한 신흥국가이며, 스리위자야를 공격하여 항복시켰습니다. 그들의 주요 교역품은 향료’입니다. 꺼디리에 정복당한 스리위자야는 꺼디리 제국 이전 최고의 동남아시아의 교역국이였습니다. 이 국가의 위치는 말라카, 순다 해협을 통과하는 실크로드의 요충지로 그 역할을 합니다. 이들의 주요 교역품에는 나침반, 화약 등이 있습니다. 또한 송은 시박사를 설치하여 무역의 질서를 확립하고 관세를 걷었는데, 시박사는 대외무역이 활성화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였으며, 시박 관리의 불법행위를 단속하는 기능을 수행합니다. 이로 인하여 외국 상인들이 국내에서 벌어들인 이익과 재산을 보호하고, 주거공간과 안정된 생활을 그들에게 제공하는 등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다음은 원나라의 해상 실크로드에 대한 설명입니다. 원나라는 동서간의 문물교류가 가장 활발했던 시기인데, 특히 쿠빌라이 칸은 중국을 완전히 정복한 후 아시아 각국에 칙서를 보내 내조하여 무역할 것을 권유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원은 그들을 중심으로하는 조공 무역권을 확대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의 대표적인 교역국에는 동남아, 페르시아, 아라비아, 로마 등이 있습니다. 동남아는 당시 조공무역을 이룩하기 위해 정부가 큰 지원을 하였고, 화인들의 집단 거주지가 증가합니다. 또한 7,8세기부터 해상교역이 활발했던 페르시아와 아라비아 국가는 몽골제국의 건설 이후 이들과 직접적인 접촉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1245년 로마 교황 인노켄티우스 4세가 교황의 문서를 몽골황제에 전달하기 위하여 몽골에 사절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중국은 주로 교역국에 도자기, 비단, 칠기류, 황금 등을 수출하였고, 바다거북, 상아, 산호, 향료 등을 수입해왔습니다, 원의 이러한 교역형태는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데 기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명의 근세 해상실크로드에 대한 설명입니다. 명은 전국토를 한인 위주로 통일한 최초의 왕조로 원말의 군사적 불안과 명 태조의 보수적인 성향 때문에 해금정책을 실시합니다. 그들은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하고 농업위주의 폐쇄적 정책을 실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금정책에도 불구하고 명의 해외무역은 활발하게 진행되었는데 특히 사치품이 아닌 생필품을 중심으로 교역이 진행됩니다. 명의 대표적인 교역국에는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등이 있습니다. 포르투갈은 동남 연해지역에서 현지 상인들과 밀무역을 하였는데, 마카오를 기점으로 삼고 중개무역을 하였다고 합니다. 스페인은 1571년 루손섬을 점령하고 필리핀을 중개지로 중국과의 무역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네덜란드는 16세기 말 스페인에 독립하게 되면서 아시아 항로에 직접 뛰어들어 중개무역을 실시하였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대항하기 위하여 대만을 강제 점령 합니다. 주된 수출품에는 사향, 차잎, , , 철기 등이 있으며, 향신료, 고구마, 옥수수, 땅콩, 진주 등이 주요 수입품입니다.

명나라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정화의 해외원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명의 제 3대 황제인 명락제는 이전의 황제들과 달리 비단길, 바닷길을 통한 교역을 장려하였으며 정화에게 함대를 이끌고 동남아시아, 인도, 중동, 아프리카까지 대원정을 하도록 명령합니다. 비록 그의 원정은 많은 장애물이 존재하였으며, 명락제 사후 해금정책으로 다시 돌아갔지만, 많은 의의를 지닌다고 봅니다. 정화의 원정은 중국인들의 남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유발하였으며, 남아시아 각지에서 화교의 수가 증가하는 등 중국이 강대국으로 발전하는데에 큰 기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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